극장을 나서면서 가슴이 콩닥거려서 이유없이 달리고 싶게 했던 작품들, 감동의 여운이 오래도록 남아서 그때만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지는 작품들이 있다. 문화계 인사들에게 그들이 가장 좋아하는 뮤지컬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영화감독 김지운, <록키 호러 픽쳐 쇼>, <헤어>,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내가 좋아하는 뮤지컬은 모두 영화로 알게 된 작품들이다. <록키 호러 픽쳐 쇼>, <헤어>,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전통적인 방식의 뮤지컬과는 거리를 두는 파격성에서 공통점이 있다.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을 비판했던 밀로스 포만 감독의 <헤어>나, 기이한 내용 안에 슬픈 정서를 담고 있는 <록키 호러 픽쳐 쇼>, 현대와 과거가 퓨전으로 뒤섞인 노만 주이슨 감독의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까지 모두 영화적으로도 뛰어난 작품이다. 하지만 뮤지컬을 좋아하게 될 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음악이 아닌가 싶다.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는 예수, 막달라 마리아, 유다, 빌라도에 이르기까지 각 인물들의 주옥같은 노래들 때문에 어렸을 때 본 뮤지컬 영화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록키 호러 픽쳐 쇼>는 뮤지컬, 호러, SF, 코미디, 포르노가 뒤섞인 기상천외한 혼합장르의 영화인데 이런 실험을 좋아한다. 극장에서 뮤지컬을 많이 보지 못했지만 이지나 연출의 <록키 호러 쇼>가 마음에 들었다. <사운드 오브 뮤직>이나 <왕과 나> 같은 작품은 안 좋아하냐고? 모든 사람들이 다 사랑하는 것에는 썩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편이라서.
만화가 김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공연장에서가 아니라 영화로 처음 봤다. 내가 20대 때 본 것으로 기억하니까 굉장히 오래 된 셈이다. 불법 복사한 비디오 테이프가 많이 돌아다니던 시절이었는데 누군가가 빌려주었다. 음악도 맘에 들었고 그 당시로서 혁신적이었던 형식도 좋았다. 처음 이 작품을 보았을 때는 유다가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면 볼수록 유다보다는 예수가, 자기들의 병을 치료해달라고 달려드는 사람들에게 밀쳐지는 예수 그리스도가 보였다. 나이 때문일까? 세상을 살면서 연륜이 쌓일수록 유다보다 예수에게 집중을 하게 된다. 유다는 정의를 위해서 공격적일 수 있고, 옳은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예수는 알면서도 행해야 하고, 지켜봐야 하고, 감내해야 하는 존재다.
참 좋은 뮤지컬이다. 시간이 흐르고 관점이 달라지면서 계속 생각할 부분이 있다는 건 이 뮤지컬이 시사하는 것, 주장하는 것이 있다는 뜻이 아닐까. 무대에 올릴 때 굉장히 조심해서, 제대로 만들어야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영화배우 문근영, <라이온 킹>, <뷰티풀 게임>
전 샤롯데 씨어터에서 본 <라이온 킹>과 박건형 오빠가 출연한 <뷰티풀 게임>이 기억에 남아요. 두 작품 모두 공연 속에서 또 다른 공연을 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할까요? <라이온 킹>은 웅장함과 기발한 무대에 감탄을 했는데, 성인이 된 심바와 나라가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어요. <뷰티풀 게임>은 축구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영화나 드라마였다면 어쩔 수 없이 테이크 별로 끊어서 촬영을 하고 편집한 영상을 모니터로만 볼 수 있는 장면이잖아요. 모든 공연이 그렇겠지만, 그런 장면들을 무대에서 라이브로 볼 수 있다는 게 정말 신기했어요. 실수 없이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 배우들은 또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반성도 많이 했답니다.
연극·영화배우 박희순, <컴퍼니>
솔직히 고백하면 나는 뮤지컬을 즐겨보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지나 연출의 작품들은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뮤지컬 <록키 호러 쇼>나 <그리스>에 출연했던 것도 그녀와의 인연 때문이었는데, 내가 노래를 잘 하는 배우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더 욕심내지 않고 있다.(웃음) 인상 깊게 본 뮤지컬은 작년 연강홀에서 보았던 <컴퍼니>. 연극적 성격이 매우 강한 작품이어서 재밌게 봤다. 그리고 아시다시피 내가 흔히 얘기하는 결혼 적령기를 살짝 놓치지 않았나. ‘나도 결혼을 해야 할텐데’라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컴퍼니>를 접했는데, 결혼에 대해 고민하는 주인공 바비를 보면서 동병상련의 심정을 제대로 느낄 수 있었다. 물론 그의 곁에 여자들이 줄 서 있다는 것만큼은 결코 공감할 수 없었지만. 아마 내가 30대 초반만 되었어도 이 작품에 그렇게까지 공감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국립발레단 단장 최태지, <캣츠>
내가 무용을 한 사람이다 보니 춤이 많은 뮤지컬에 관심을 쏟게 된다. 1985년에 뉴욕에서 관람한 <캣츠>는 뮤지컬이라는 장르를 새롭게 볼 수 있게 해준 작품이었다. 출산 후 다시 무용을 시작하면서 뉴욕에 머물 때였는데, 뮤지컬에 뉴욕시티 발레단 솔리스트가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공연장을 찾았다. 크고 화려할 것이라고 상상했던 공연장이 예상 외로 아주 작고 아담해서 기억에 남는다. ‘메모리’도 물론 좋았지만 무엇보다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고양이들의 움직임이었다. 그것은 무용을 전공한 사람들만이 가능한 것이었다. 클래식 발레와 현대 무용이 어우러진 완성도 높은 무대였다. 뮤지컬이라는 장르가 가깝게 느껴졌을 뿐만 아니라, 발레와 뮤지컬이 서로 어우러져 퀄리티 높은 작품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가능성을 보았던 것 같다. 이번 <캣츠> 한국 공연에 우리 발레단 출신인 유회웅과 정주영의 출연을 허락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무용계 스타들이 뮤지컬에 출연해서 무용 파트를 탄탄하게 받쳐주고, 그들에게서 자연스러운 연기를 배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언어가 필요 없는 예술을 하는 사람들이 대사를 통해 감정을 표현할 때 그 느낌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우리 단원들에게 뮤지컬 출연 기회를 주고 싶지만 장기 공연에 대한 부담이 있어서 아쉬운 마음이 든다.
가야금 연주가·작곡가 황병기, <헤어>
제일 좋아하는 작품은 뮤지컬 <헤어>다. 60년대에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사람들이 그 작품 이야기를 아주 많이 했는데 배우들이 모두 옷을 벗고 나온다는 게 화제라 도리어 그냥 지나치게 됐다. 그런데 몇 번인가 다시 미국에 갈 때마다 계속 공연을 하고 있어서 얼마나 좋은 작품이기에 이렇게 오래 하나 싶어서 보게 됐다.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히피들에 대한 이야기인데 어느 순간에도 딴청을 피울 수 없게 극이 아주 긴장감 있게 진행이 된다. 보면서 정말 감동을 받아서 그때 LP를 사가지고 왔다. 뮤지컬 영화 <지지>도 좋았는데 프랑스 배우 모리스 슈발리에가 그 작품에서 특히 좋았다. 내 음악 ‘미궁’을 사용한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도 보기는 했는데… 한국에서 본 뮤지컬 중에는 <노트르담 드 파리>가 괜찮았다. 딸이 보러 가라고 표를 선물해줘서 봤는데 음악이나 극이나 전반적으로 마음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