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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ORIGINAL] 화려한 영상이 화려한 쇼로 태어나다, <42번가> [No.70]

글 |박병성 2009-07-13 6,539

 

 

 

 

 

 

 

 

 

 

 

 

 

 

 

 

 

 

 

 

 

 

국내 뮤지컬 팬들에게 <42번가(42nd Street)>는 매우 친숙한  작품이다. 1996년 삼성영상사
업단이 뮤지컬에 뛰어들면서 해외 스태프진들과 함께 공연을 올린 첫 작품이 바로 <브로드
웨이 42번가>였다. 가슴까지 울리는 일사분란한 탭댄스와 화려한 의상은 쇼 뮤지컬의  전형
적인 패턴을 보여주고, 무명의 순진한 소녀 페기 소여가  스타로 등극하는 스토리는 귀가하
는 발걸음을 또각또각 즐겁게  해주었다. <42번가>는 ‘뮤지컬’  하면 떠오르는 전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작품이다. 원작은 1933년에 만들어진 동명의 뮤지컬 영화였다. 1980년
고어 챔피언이 안무와 연출을 맡아 뮤지컬로 다시 탄생한 것이다. 원작인 영화는 뮤지컬 영
화사에서도 매우 중요한 작품으로 꼽힌다.

 

 

뮤지컬 영화의 새로운 이정표 <42번가>
최초의 유성영화인 <재즈 싱어>(1927)가 뮤지컬 영화의  형식을 띠었듯 유성영화의 시작은
뮤지컬 영화와 깊은 관련이 있다. 최초의  뮤지컬 영화라고 일컬어지는 MGM사의 <브로드
웨이 멜로디>가 1929년에 만들어진 이래로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수많은 뮤지컬 영화들이
쏟아졌다. 그 당시 한창 인기를 얻었던 뮤지컬 영화의 형식은  무대 뒤를 배경으로 하는 백
스테이지(Backstage) 뮤지컬이었다. 뮤지컬 영화가 처음 등장한 1929년 55편의 뮤지컬 영화
가 만들어졌다가, 1930년에는 77편으로 정점을 이루고  서서히 감소해 1932년에는 10편으로
줄어든다(이후 1960년대까지 1932년은 뮤지컬 영화가  제일 적게 제작된 해였다). 1933년은
뮤지컬 영화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는 해였다. 작품 수는 줄어들었지만 기술이나 텍스트의

정교함을 높여갔다.
워너 브라더스사는 이전의 그것과는 달리 음악과 내러티브를 적절하게 결합한 뮤지컬  영화
를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이전의 뮤지컬 영화들이 기존 무대  공연을 영화로 옮긴 것이라면
워너 브라더스사의 영화는 새로운  소재로 만들어졌고, 그것은 대부분  무대 뒤를 배경으로
했다. <42번가>가 그 첫 주자였다. 이후  <풋라이트 퍼레이드(Footlight Parade, 1933)>, <
일확천금주의자들(The Gold Digger of, 1933)>, <귀부인들(Dames, 1934)> 등  워너 브라더
스사의 백스테이지 뮤지컬은 인기를 끌며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했다.  이 당시 워너 브라더
스사의 뮤지컬 영화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이 바로 안무가 버스비 버클리이다. 그는  <42번가
>를 비롯해 앞서 언급한 워너 브라더스 영화들의 안무를 모두 담당했다.
<42번가>는 버스비 버클리가 워너 브라더스와 함께 하는 첫 작업이었다. 영화에서 페기 소
여 역을 맡은 루비 킬러(Ruby  Keeler) 역시 이 작품을  시작으로 이후 워너 브라더스에서
만드는 작품의 젊은 여주인공 역을 도맡아 하게 된다. 버스비 버클리의 무대는 늘 화려했고
그는 많은 앙상블이 나와 조형적인 군무를 만들어내도록 하는 데 재주가 있었다. 그는 버드
아이즈(Bird Eyes)라는 고공 촬영 기법을 통해 군무를 추고 있는 코러스들의 조형미를 아름
다운 영상으로 담아냈다.
엄격히 따진다면 <42번가>는 뮤지컬 영화가 아니다. 단지  백스테이지를 배경으로 하는 영
화일 뿐이다. 왜냐하면 작품 속에 등장하는 뮤지컬 넘버는 총 5곡인데 이 곡들은 극중극  <
귀여운 여인(Pretty Lady)>에 삽입된 곡이기 때문이다.

 

 

 

극의 구조와 플롯
<42번가>는 시골에서 올라온 순진한 댄서 페기 소여가 우여곡절 끝에 스타로 등극하는  이
야기이다. 영화와 뮤지컬의 스토리는 큰 맥락을 같이 하면서도 미세하게 차이를 보인다.  작
품의 배경은 1930년대로 대공황을 겪고 있는 시기이다. 사회  전체에 실업이 증가하고 공연
계 역시 제작비를 충당하기 어려운 시기였다. 작품 속 시대적 배경과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영화에서는 이러한 경제적 공황에 대한 어려움이 진하게 배어 있다. 페기 소여의 성공 스토
리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에 적합한 내용이었다.
1930년대에 만들어진 원작 영화에서는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안간힘이 느껴진다. 특히 연출
가인 줄리안 마쉬가 극중극 <귀여운 여인>을 성공시키기 위해 쉴 틈을 주지 85

않고 연습하는 장면은 절박하게 보여진다. 배우들은 녹초가 되고, 피아니스트조차도 거의 졸
면서 기계적으로 반주를 한다. 이 공연이 반드시 성공해야만 여기에 참가하는 수백 명의 사
람들이 일자리를 잃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작자인 애브너 딜런의  비위를 맞추어야만
하는 상황도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영화의 주인공은 페기 소여가 아니라 작품을 성공
적으로 이끌어야 하는 연출자 줄리안 마쉬인 것이다. 반면, 뮤지컬에서는 한 시골 소녀가 브
로드웨이에 와서 스타가 되는 신데렐라 스토리에 포커스가 맞춰진다. 영화가 제작된 1930년
대에는 경제적인 어려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대중들의 욕망이 컸지만 뮤지컬이  만들어진
1980년에는 그러한 열망이 식었기 때문에 대중들의 일반적인 욕망인 신데렐라 스토리  구조
로 바뀐 것이다.
뮤지컬에서 페기 소여가 주인공이 되면서 상대적으로 도로시 브록은 그를 괴롭히는 악한 역
할로 변하게 된다. 원작 영화에서  도로시는 도도하기는 하지만 베테랑  여배우로서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 하지만 뮤지컬에서는 제작자의  후원이 없으면 작품에 참여하기  힘든 한물
간 퇴물 배우로 전락한다. 게다가 춤 실력이 없어서 작품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다. 도로시 브록은 영화의 첫 연습장면에서 ‘You`re Getting To Be a Habit With Me’
를 매우 매력적으로 부른다. 두 남자 코러스와 호흡을 맞추며 부르는 그녀는 충분한 매력을
발산한다. 반면 뮤지컬에서 그녀가 첫 곡으로 부르는  노래는 ‘Shadow Waltz’이다. 도로
시가 춤을 못 추기 때문에 조명을 이동시키면서 그림자가 춤을 추는 듯한 분위기를 연출한
것이다. “주인공이 1막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것이 어디 있냐”는 도로시의 불만은 그녀의
처지를 보여준다.
‘Shadow Waltz’는 몸치인 도로시의 춤  실력을 코믹하게 보여주는 곡이면서  또 그녀의
입장을 대변하는 노래로서도 기능한다. 이 곡은 그림자 속에 숨겨진 사랑에 대한  노래이다.
제작자인 애브너 딜런이 도로시를 후원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의 애인인 팻 데닝과는  비밀
데이트를 해야 하는데 그러한 심정이  은유적으로 담겨 있다. 이 노래  장면이 끝나고 바로
팻이 등장하면서 가사의 의미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게 만든다.
또한 뮤지컬에서는 줄리안 마쉬와 페기  소여의 미묘한 러브 라인을  형성한다. 영화에서는
빌리가 페기에게 반해서 기회만 있으면 프로포즈를 하려고 한다. 또한 도로시의 남자친구인
팻 데닝이 페기를 도와주고, 페기는 팻 데닝을 두둔하다 하숙집에서 쫓겨나 그의 숙소로 가
는 등 둘 사이에도 이상한 전류가  흐른다. 줄리안 마쉬와도 그러한 상황이 연출된다.  그는
연습 도중 사랑하는 여인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페기에게 키스를 한다. 즉,  영화에서
는 남자를 잘 모르는 페기의 순수함을  부각시키면서 모든 남자들이 그녀를 좋아하고  있는
상황을 연출했다. 그러나 뮤지컬에서는 줄리안과 페기의 관계를 좀더 긴밀하게  만들어준다.
페기를 해고하고 나서 집으로 떠나는 그녀를 역에서 데리고  오는 것도 줄리안이고, 영화와
같이 연습장면에서의 키스를 하고 난 후, <귀여운 여인> 공연에 앞서 “오후엔 연기였지만
지금은 진심이오”라며 부드럽게 입맞추는 것도 그다. 줄리안과 페기의 러브 구도는 줄리안
조차도 페기의 매력에 빠져들게 해서  페기를 돋보이게 하려는 수단이다.  영화와 뮤지컬의
마지막 장면을 보면 이것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영화의 마지막에서는 <귀여운 여인>이 성공적인 공연을 마치고 난 후, 극장을 나서는 관객
들이 은 ‘줄리안 마쉬가 페기 덕을 봤다’며 페기 소여를  칭찬한다. 그런 관객 틈 사이에
서 모자를 눌러쓰고 쓸쓸히 남아 있는 줄리안의 모습에서는  진한 페이소스가 느껴진다. 그
러나 뮤지컬은 줄리안 마쉬가 당당하고 한층 성숙해진 페기를 흡족하게 바라보는 장면으로 끝맺는다.

뮤지컬에서 주목한 것은 줄리안이 아니라 페기인 것이다.

 

 

화려한 노래와 춤
원작 영화에서 사용된 노래는 총 5곡이다. 그 곡들은 모두 극중극인 <귀여운 여인>에 나오
는 뮤지컬 넘버이다. 오디션  장면이나 도로시가 연습하는  장면에서 ‘You`re Getting To
Be a Habit With Me’를 비롯한 몇몇 곡들이 불려지고 나머지는 페기가 <귀여운 여인>을
공연하는 장면에 등장한다. 뮤지컬 버전에서는 영화에 쓰인 5곡과 함께 새롭게 11곡이 작곡
되었다. 뮤지컬에서는 1막과 2막에 한 번씩 극중극 장면이  긴 시간 등장하는데 영화에서처
럼 대부분의 곡들이 극중극의 뮤지컬 넘버로  나온다. ‘Shadow Dance’는 리허설 장면에
서 불려지고, ‘Dames’나 ‘Keep Young  And Beautiful’, ‘42nd Street’(영화에도 사
용됨) 등도 극중극의 뮤지컬 넘버로 사용된다. ‘Young  and Healthy’는 영화에서는 극중
극에 포함된 노래였지만, 뮤지컬에서는 남자배우 빌리가 페기를 처음 보고 마음이 흔들리는
장면에서 대사의 연장선으로 부르는 곡이다. 남자가 여자를 유혹하는 가사 내용이 극 중 상
황과 잘 매치되어서 자연스럽게 영화와 노래 사용을 달리  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뮤지컬에
서 노래는  대사의 연장으로  쓰이는데 총   16곡 중 그렇게  사용되는 노래는  앞서  말한
‘Young And Healthy’, 도로시가 애인인 팻을 쫓아보내고 가슴 아픈 심정을 노래하는 ‘I
Only Have Eyes For You’, 애니와 앙상블이 공연을 끝내야 해서 절망하는 ‘Sunny Side
To Every Situation’ 뿐이다.
뮤지컬 <42번가>의 화려한 쇼는 모두  극중극으로 보여진다. 그렇다고 극중극이 <키스  미
케이트>와 같이 극 밖의 상황과 긴밀하게 연결된 것도 아니다. 페기가 꿈을 이루는  드라마
와 극중극은 드라마적인 연관이 없다. 극중극은 최대한 화려하고  볼거리를 주기 위한 역할
로서 사용된다. 버스비 버클리가 만든 <42번가>는 수십 명의 무희들이 등장하는 굉장히 화
려한 영화였다. 특히 극중극 <귀여운 여행>은 과거의  화려한 엑스트라버간자 형태의 쇼였
다.
1980년 뮤지컬로 제작하면서 화려한 영화의 분위기를 재현하기 위해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
졌다. 54명의 배우가 캐스팅되었으며 사용된 의상만도 750벌이 넘었다. 수십 가지의 무대 효
과가 사용되었고, 제작비만 240만 달러가 들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화려한 뮤지컬의  부활
에 핵심적인 구실을 한 것은 연출 및 안무를 맡은 고어 챔피언이었다. 그는 지병 중에도 팀
을 이끌며 화려한 탭댄스를 만들어냈다. 거대한  동전 위에서 현란한 탭을 추는 코인  댄스,
피날레 장면에서 계산 위를 오르내리며 탭을 추는 계단  댄스 등, <42번가>의 성공은 상당
부분 그의 공이었다. 그러나 그는 지병인 암으로 뉴욕 오프닝  공연을 보지 못하고 숨을 거
두고 말았다.

뮤지컬에서는 영화와 똑같이 연출된 것은 아니지만 영화의 장면을 연상시키는 일종의  오마
주와 같은 장면들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늘씬한 무희들이 바닥에 둥그런 대열을 갖추
고 춤을 추는 모습을 거대한  대형 거울에 비춰 보여주는 장면이다.  뮤지컬의 미러 댄스는
영화의 마지막 극중극에서 하얀 옷을 입은 코러스걸들이 늘씬한 각선미를 일정한  모양으로
만들고 대형을 취하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버스비 버클리가 즐겨 쓰는 버드 아이즈 기법
을 사용한 장면이었다. 카메라는 새가 되어서 공중에서 바라보듯 코러스걸들의 군무를 보여
준다. 영상이기 때문에 가능한 기법을 무대에서는 대형 거울을  통해 재현해내려고 했던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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