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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CULTURE IN MUSICAL] 꽃으로 세상과 맞설 수 있을까 <헤어> [No.70]

글 |김영주 2009-07-30 5,959

뮤지컬 <헤어>와 히피들의 전쟁

 

지난 6월 7일에 열린 2009 토니상 시상식에서 아름다운 여배우 앤 해서웨이는 베스트 리바이벌상 후보작인 <헤어>를 소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격동의  1960년대에 대해 말하는 강렬한 문제작이 브로드웨이로 돌아옵니다. 권위에 도전하고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이 작품은 ‘만약 네가 너의 삶을 바꿀 수 있다면, 너는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나 자신을 바꾸는 것과 세상을 바꾸는 것이 똑같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정도로는 영악한 21세기의 우리에게 <헤어>가 전하는 메시지는  너무나 낙천적이고 달콤하다. 믿고 싶지만 그대로 믿기에는 지나치게 순진한 것 같아서 망설여지는 저 ‘희망의 메시지’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우리 문화에서야 머리에 꽃을 꽂는다는 게 정상적인 정신상태가 아님을 알리는 가장 흔하고 일반적인 상징이지만, 60년대 미국에서는 그것이 ‘나는 세상이 바뀌기를 원하고,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내 인생을 바꾸겠다’는 선언과 다르지 않았다. 하긴 요즘 세상이 돌아가는 모양을 보면 세상을 바꾸겠다는 꿈을 꾸고  행동으로 옮긴다는 것 자체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뜻이기는 하다. 하여튼 60년대 히피들에게 빗질하지 않고 제멋대로 길게 내버려둔 머리카락은 자유로운 에너지를 상징했고, 그  머리에 얹은 화관이나 귀에 꽂은  꽃은 평화와 사랑의 힘을 믿는다는 신앙고백이었다.


50년대의 냉전과 권위주의, 하루가 다르게 기세를 높이는 물질주의에 대한 반발로 미국에서 시작된 히피 문화는 같은 시대에 유럽에서 일어났던 68혁명과 상당부분 겹치지만 완전히 같은 양상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들은 동시대의 정서를 공유하고  있었고 기존의 세상에 대한 같은 종류의 의문과 분노를 느꼈으며 많은 부분을 공유했다.  하지만 파리 시내에서 대학생들이 바리케이트를 쌓으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한 달간의 투쟁과 미국에서  히피들이 전개한 축제는 닮은 전쟁은 같은 듯 달랐고, 다르면서 같았다. 

파리에서든 샌프란시스코에서든 국가의 이익보다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앞서야 한다는 메시지는 같았다. 기성세대의 위선과 폭력,  억압에 대한 저항도 같았다.  반전과 평화를 외치는 구호도 같았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의 히피들은 동의하지 않는 전쟁에 끌려가서 총을 들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려 있다는 점에서 다른 대륙의  ‘형제들’과 달랐다. 국제사회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그들의 조국은  인종문제라는 원죄를 지고 있었고, 베트남전을  주도했으며, 내면의 평화와 정신적인 자유를 추구하던 히피들의  손에까지 징병통지서를 쥐어주었다. 이것은 ‘사랑이 전쟁보다 낫다’는 것이 제1계명이었던 히피에게는 신념을 지키고 범법자가 되거나, 배교하고 살인자가 되는 길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뜻이었다.

 


히피들은 징병통지서를 고의로 훼손할 경우 5년의 징역형에 처할 수 있다는 협박에도 불구하고 모여 앉아 노래하고 춤추면서 저주받을 전장으로의 초대장을 불태웠다. 뮤지컬  <헤어>에도 등장하는 이 장면은 1967년 펜타곤에서 일어난 사건을 연상시킨다.

 

1967년 10월 2l일, 워싱턴의 링컨 동상 앞에서 5만여 명이 참여한 대규모 반전 집회가 열렸다. 그들은 전쟁을 끝내지 않는 존슨 대통령을 향해 ‘이봐 존슨, 오늘은 어린애 몇을  죽였나?’라고 힐난했고 기독교도들과 회교도들은 함께 ‘우리는 지옥에 가기 싫다’는  구호를 외쳤다. 행사가 끝난 후 버클리대학 SDS(Students for a  Democratic Society)의 핵심 인물
이었던 제리 루빈의 지휘 아래  시위대 중 일부가 펜타곤 쪽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집회에 참여했던 사람들 중에 대학생과 평화를  위한 여성 파업 그룹, 노엄  촘스키와 노먼 메일러 등 지식인들, 그리고 다수의 히피들이 행렬을 이루었다.


SDS 내 소그룹인 혁명소대 멤버들이 외부인의  출입을 봉쇄하는 장벽을 뚫고 미국 군사력의 상징이자 심장부인 펜타곤에 들어가 미국 국기부터 끌어내렸다. 히피들은 펜타곤을 경비하는 경찰과 군인들 앞에서 가슴을 드러내고 선정적인 노래를 부르면서 그들을 희롱하고 교란시켰다. 소녀들을 경비병들의 총신에 꽃을 걸어주기도 했다. 그 와중에 지식인들은 경비병들을 붙들고 대화를 시도했다. 그때까지는  괜찮았다. 하지만 국방부 정문 앞에서  난투극이 시작되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평화로웠다.  이대로 진행하게 해달라!’는 외침도 소용이 없었다. 결국 이날 1,000여 명이 체포되었고 정부는 펜타곤 방어에 약 100만 달러를 썼다고 발표했으며 남북전쟁 이후 가장 과격한 반정부 시위라는 딱지를 붙였다. 

그날 밤 펜타곤 밖으로 쫓겨난 시위대 중 남은 2,3천여  명은 펜타곤 정문의 나무 차단기를 장작 삼아 캠프파이어를 하면서 일명  ‘평화의 담배’로 불린 마리화나를  나누어 피웠다. 그리고 징병통지서를 다함께 불태웠다.  히피들의 비폭력 문화 운동은 정치 사회적인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시카고 민주당 전당대회 기간 동안 열린 대규모 반전 시위 당시, 시카고 시장 리처드 데일리는 매일 1만2천 명의 경찰병력을 휴식 없이 12시간씩 투입시키고 그들을 지원하기 위한 FBI 요원과 주 방위군, 육군 6천 명을 시 외곽에 배치했다. 총검과 기관총, 가스마스크를 갖춘 그들과 시위대는 시카고 시내와 교외의 공원에서 격렬하게 충돌했다. 시카고와 펜타곤에서의 사건을 겪으면서 ‘정치적인 히피’를 뜻하는  ‘이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싸워야 하는 대상과의 충돌이 잦아질수록 꽃으로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깨달은 이들이 많았다는 뜻이다.

 

한 세대, 그리고 한 시대에 대해 한 단어로 단정 짓는 것은 어리석고 무모한 일이겠지만 20세기를 사람의 일생 중 한때에 비교하자면 아마도 스무 살이 아닐까 싶다. 1960년대는 지난 세기의 100년 중 인류가 가장 젊은 때였고, 가장 뜨거운 시기였다. 그들은 세상의 많은 부분을 바꿨지만 그들 대부분도 변했다. 6,70년대에 히피였던 이들이 나이 먹고 ‘철들어서’ 주류 사회에 편입한 후에, 젊은 시절에 추구했던 것 중에서 개인주의와 쾌락주의만 끝까지 지켜서 여피, 혹은 보보스족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바로 지금 덴마크의 히피 공동체 크리스티아니아 마을 사람들은 대안적인 삶을 꾸려왔던 그들의 작은 터전을 빼앗아 그곳에 아파트를 짓겠다는 우파 정부에 저항하고 있다. 초연 당시 베트남전에서 목숨을 잃는 히피 클로드 역으로 출연했던 <헤어>의 극작가  제임스 라도를 만나러 가면서 ‘Let the Sunshine in’을 소리 높여 부르는  21세기 젊은이들의 모습은 보는 이들의 가슴을 뜨겁게 한다. 긴 머리에 비니 모자를 쓰고 크로스백을 맨,  나이를 짐작할 수 없게 하는 옷차림의 제임스 라도가 조금 수줍어하면서 그들을 반갑게 맞아 포옹하고 손을 맞잡을 때, 불쑥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쟁을 강요하는 정부보다도 무서운 것은 자신을 지킬 수 없게 만드는 일상일텐데, 긴 삶동안 진정한 자신을 찾기 위한 전투를,  길찾기를 포기하지 않은 이들이 있다는 것은 고마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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