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본과 무대 미술, 연출과 안무 등 뮤지컬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많지만 음악을 빼놓고는 뮤지컬을 이야기할 수 없다. 모든 뮤지컬이 음악에 대한 큰 부담감을 갖고 있는데, 이미 대중들에게 알려진 노래를 활용한 주크박스 뮤지컬은 일단 그런 고민을 해결할 수 있다. 국내외에서 과거의 히트곡들을 모은 주크박스 뮤지컬이 다수 제작되었고, 중년 관객들의 향수를 자극하며 인기를 얻곤 했다. 하지만 콘서트가 아닌 뮤지컬에서 음악은 드라마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미션을 타고난바, 히트곡들이 어떤 대본 안에서 그 빛을 발할 수 있을지가 주크박스 뮤지컬이 풀어야 할 과제이다.
주크박스 뮤지컬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는 <맘마미아>이다. <맘마미아>는 한 그룹의 노래만으로 만들면서도 새롭게 구축한 드라마가 견고했고, 예상치 못한 순간에 드라마와 딱 맞아떨어지는 음악이 흘러나와 관객이 무릎을 치게 만들었다. <맘마미아>의 영향으로 전보다 더 많은 주크박스 뮤지컬들이 제작되었다. 평단으로부터 호평 받거나 적어도 관객들이 즐거워한 작품도 있었으나, 음악과 드라마의 유기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은 작품도 많았다. 여기서 주크박스 뮤지컬에 필요한 것은 단순히 재미있거나 감동적인 스토리가 아니라, 음악의 매력을 충분히 살릴 수 있는 드라마임을 새삼 되새기게 된다.
<맘마미아>는 아바의 노래만으로 만들어졌으며, 남자 둘 여자 둘로 구성된 아바의 두 커플은 음악 활동과 사랑과 결혼, 이혼을 함께 경험했다. 아바의 두 남성 멤버는 뮤지컬의 음악 작업에 참여했으며, 아바가 만들고 불렀던 노래들의 가사와 정서가 젊은이들과 중년의 사랑, 중년에 돌이켜보는 자유분방했던 젊은 날을 이야기하는 데 매우 적절했다. <맘마미아>의 대본은 음악의 주인공인 아바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브로드웨이로 진출하진 못했지만 웨스트엔드에서 큰 인기를 얻었고 2003년 올리비에상에서 베스트 뮤지컬상을 받은 <아워 하우스>는 우리에겐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매드니스(Madness)라는 밴드의 음악으로 만든 주크박스 뮤지컬이다. 이 작품 역시 영국인에게 유명한 음악과 극적 완성도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아워 하우스>는 영국의 평범한 청소년이 의도치 않게 불법 행위를 저지른 후 이 상황을 어떻게 타계해 나갈지 고민하는 이야기로, 밴드 매드니스와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내용은 아니다. 하지만 <아워 하우스>는 런던 북부의 캄덴 지역에 사는 서민들과 청소년들의 표본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매드니스의 음악은 지역색을 짙게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흔들리는 청춘들을 대변하는 노랫말을 갖고 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해볼 때 매드니스의 음악에서 이런 대본이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실제로 매드니스는 <아워 하우스>의 가사 작업에도 참여했다. 그리하여 매드니스 음악이 그 색을 잃지 않으면서도 드라마에 잘 묻어날 수 있는 데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주크박스 뮤지컬 두 편은 소재로 삼은 뮤지션의 음악적 배경에 기대어 이야기를 만들어내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는 한결 수월한 접근 방법일 뿐만 아니라 음악과 드라마의 유기성을 도모하는 데 유리했다. 한 사람의 음악에는 그의 인생이 많이 녹아 있으므로 뮤지컬에서 뮤지션의 일생을 다루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맘마미아> 이후 가장 성공적인 주크박스 뮤지컬로 꼽히는 <저지 보이스>는 프랭키 밸리와 포 시즌스의 음악을 활용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그들의 음악을 들으러 온 관객들에게 간접적으로나마 뮤지션도 함께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준 셈이다. <저지 보이스>는 2006년 토니상에서 베스트 뮤지컬상뿐만 아니라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을 받을 만큼 배우의 역할이 크기도 했지만, 포 시즌스의 옷을 입은 배우들이 들려주는 추억의 음악은 관객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뮤지션이 직접 무대에 등장하지 않더라도 그를 본뜬 캐릭터를 등장시켜 관객들로 하여금 그를 만난 듯한 감동을 줄 수 있다. 본토에서보다 국내에서 더 큰 사랑을 받았던 <올 슉 업>에서 빗어 넘긴 머리에 오토바이를 타고 등장한 주인공 채드는 누가 봐도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상시킨다. 스탠더드 팝이 대세이던 1950년대에 엘비스 프레슬리는 로큰롤 음악의 열기를 몰고 왔다. 그 특유의 춤과 쇼맨십은 기성세대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지만 십 대 청소년들로부터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올 슉 업>에서 보수적인 시장에 맞서 유들유들한 태도로 시민들에게 사랑과 음악을 전파하는 방랑자 채드는 기성 사회를 향한 반항의 아이콘이던 엘비스 프레슬리의 음악을 들려주는 데 제격이다. 빈약한 스토리 때문에 평단으로부터 비판을 받았지만 관객들은 열광했던 <위 윌 락 유>도 퀸이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음악 창작이 금지된 미래의 세상에서 전설의 기타를 찾아내어 록 음악의 선구자가 되는 주인공 갈릴레오의 역경과 노력은 퀸의 음악이 추구하고 이루었던 것과 별개로 생각할 수 없다. 게다가 극 중 인물들의 이름(갈릴레오 피가로, 스카라무슈, 킬러 퀸)이나 배경(일곱 바다, 윔블던 경기장)과 주요 소품인 기타 등 음악뿐만 아니라 드라마의 전반에서 <위 윌 락 유>가 퀸의 그림자 내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올해 첫선을 보인, 이영훈 작곡가의 음악을 모은 주크박스 뮤지컬 <광화문 연가>의 성공 요인을 설명할 수 있다. 화려한 캐스팅, 좋은 노래 다시 듣기가 붐을 일으킨 문화적 현상 등에 힘입은 바도 있지만, 이영훈 작곡가의 주옥같은 음악이 뮤지컬에서 어떤 방식으로 재생되었는지가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이영훈이라는 이름을 쓰진 않았지만 그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주인공이 등장하여, 그가 과거에 사랑했던 여인과 친구를 위해 썼던 음악들이 어떤 사연과 감정 속에 탄생했는지 보여준 점이 주효했다. 원곡의 정서를 해치지 않으면서도 서정적이고 슬픈 감성 위주의 음악들을 지루하지 않게 들려주었다. 중년 관객들의 젊은 시절과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뮤지션의 음악을 다시 들을 수 있었고, 그가 음악을 하며 느꼈던 시대적인 고민과 개인적인 감성이 고스란히 객석에 전해졌다.
곧 개막을 앞두고 있는 <스트릿 라이프>는 현재도 활발히 활동 중인 DJ DOC의 음악을 엮은 작품이다. 여러 차례 대본 수정 작업을 거쳤던 성재준 연출이 애초에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결국 DJ DOC의 젊은 시절을 닮은 주인공들이 음악을 향한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가 탄생했다. 거칠면서도 통쾌하고, 흥겨우면서도 애잔한 노래에 그들의 인생이 고스란히 묻어 있으니 자연스럽게 그들의 궤적을 따르는 대본이 나온 것이다.
새롭고 신선한 이야기만이 능사는 아니다. 늘 낯 뜨거운 드라마가 문제였던 주크박스 뮤지컬의 극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뮤지션의 음악적·사회적 정체성을 기꺼이 대본에 녹여내는 것을 하나의 선례로 제시할 수 있겠다. 그것이 주크박스 뮤지컬의 드라마가 안정된 자리를 잡게 하는 동시에 기존 음악의 매력을 살리는 방법임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런 전략의 주크박스 뮤지컬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으면, 그다음에는 또 다른 새로운 길이 주크박스 뮤지컬의 진화를 이끌지 않을까.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95호 2011년 9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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