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개막을 앞두고 있는 <위키드>와 <블랙메리포핀스>는 그들의 이란성 쌍둥이 같은 또 다른 작품을 떠올리게 만든다. <오즈의 마법사>와 <메리 포핀스>가 그것이다. <위키드>와 <블랙메리포핀스>가 앞서 말한 두 작품에 기반을 두고 쓰였으니, 이런 연상 작용이 일어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위키드>와 <오즈의 마법사>, <블랙메리포핀스>와 <메리 포핀스>는 동상이몽을 하듯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래도록 사랑받은 고전 동화에서 파생한 두 작품은 원작이 대중의 뇌리에 깊이 뿌리내린 인식을 무참히 깨버린다. 이들을 비롯해 발상의 전환을 꾀한 작품들은 왜 기존의 사고를 뒤집으려 했을까?
다양한 소재 발굴
모든 창작자들은 새로운 것을 원한다. 비단 글과 음악을 쓰는 작가뿐만 아니라, 상품을 만드는 생산자들도 진부함에서 벗어나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소비자를 자극하고자 한다. 우선,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소재를 활용하면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다. 오랜 시간 뮤지컬 무대에는 로맨스와 코미디가 주를 이루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소재가 무척 다양해졌다. 뮤지컬에서 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스릴러물(<스위니 토드>, <쓰릴 미>, <잭 더 리퍼>)과 추리물(<셜록홈즈>), 동성애 소재의 극들이 등장한 것이다. 특히 동성애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금기시된 소재였는데, 최근에는 상당히 대중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왕의 남자>와 <앤티크>, <쌍화점> 등 유명 배우와 스태프가 참여한 상업 영화에서 동성애를 전면에 내세워 소재의 대중화에 앞장섰고, 뮤지컬에서도 <쓰릴 미>와 <풍월주> 등이 사랑을 받고 있다. 현재의 인기 아이템을 선택해 안전한 출발을 할 수도 있으나, 창작자들을 자극하는 것은 역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그 무엇이다.
하지만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고, 머리를 굴리고 또 굴려보아도 완벽하게 새로운 소재를 찾아내기는 힘들다. 소재 고갈의 대안으로서 기존의 것에 변형을 가하는 것이 더 수월한 창작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일부 창작자들은 앞서 나가기 위해 내달렸던 발걸음을 멈추고 역주행을 감행하기도 한다. 이미 사랑받았던 작품들을 뒤집어 보기 시작한 것이다.
아는 작품도 다시 보기
기존의 것을 재해석한 작품들은 유명한 원작과의 연관성으로 관객에게 친숙함을 주는 동시에, 알던 것과는 다른 이야기라서 신선하다는 인상을 준다.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 이전의 이야기를 담았다는 데서 궁금증을 유발한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단역으로 출연했던 나쁜 마녀 엘파바와 착한 마녀 글린다는 <위키드>에서는 당당히 주인공의 자리에 앉았다. 마법 학교에 다니며 우정을 키워 나갔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오즈의 마법사>에서 의심 없이 받아들였던 도로시의 여정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보게 된다. 천진난만했던 도로시의 모험 속에 숨겨진 또 다른 진실이 <위키드>의 주요 내용이다. 이미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다른 관점에서 바라봄으로써 관객에게 반전의 짜릿함과 원작과 비교하는 재미를 안겨 주었다.
원작의 재해석을 통해 평면적이었던 인물이 입체적으로 되살아나기도 한다. 어떤 인물이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선하거나 악한 사람은 없다. 원작에서 엘파바는 단순히 죽여야 하는 사악한 인물에 그쳤다. 하지만 <위키드>에서 엘파바는 오즈의 마법사의 뜻에 반했을 뿐 정의롭고 현명했다. 새롭게 재조명된 인물의 또 다른 예로 <춘향전>의 방자와 <신데렐라>의 새 언니를 들 수 있다. 그저 미천하고 방정맞은 방자와 못 생기고 욕심 많은 신데렐라의 언니는 최근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통해 소개된 <방자전>과 <신데렐라 언니>에서 새롭게 재탄생했다. 세속적인 욕망의 줄다리기를 하는 몽룡과 춘향 사이에서 남자답게 춘향을 사랑했던 방자와, 오히려 부족함 없이 천진하게 자라 뭐든 욕심내는 의붓동생과는 달리 묵묵히 제 일을 열심히 했던 신데렐라 언니의 모습은,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던 것과 달랐다. 으레 주인공의 적은 나쁜 놈이라는 전통적인 캐릭터 인식을 깨고 단순한 캐릭터에 입체감을 부여해, 그를 중심으로 한 참신한 작품이 탄생했다.
기존의 통념 깨기
<자나, 돈트!>는 현실에서는 성적 소수자인 동성애자들이 일반적인 세상을 배경으로 했다. 기존의 사회적 통념을 통 크게 뒤집은 것이다. <자나, 돈트!>의 세상에서는 남남 커플과 여여 커플의 애정 관계가 자연스럽다. 극 중에서 성적 소수자인 이성애자들의 입대 문제를 소재로 한 뮤지컬을 준비하면서 이성애자를 연기하던 스티브와 케이트가 위험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혼란스러워한다. 현실에서라면 처음으로 동성에게 관심이 있음을 깨닫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이뿐만 아니라 작품 곳곳에서 현실에서 통용되는 성 역할에 대한 인식과 편견을 뒤집어 보여줌으로써 관객의 웃음을 자아낸다. 여기서 성적 취향에 대한 발상의 전환이 의미 있었던 것은 <자나, 돈트!>가 어떤 이의 사랑이든 동등하게 존중돼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나, 돈트!>는 자나의 마법을 통해서 이성애자들이 주류를 이루는 세상으로 바뀌며 끝맺는다. 모든 이들은 이성애자가 됐지만 홀로 여전히 동성애자로 남은 자나가 새로운 세상에서 소외받는 모습에서 안타까움이 느껴진다. 현실 뒤집기라는 극적 장치로 오히려 씁쓸한 현실을 마주하게 함으로써, 사회적 편견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갖게 했다.
여자 무용수들이 백색의 튀튀를 입고 아름답게 춤을 추며 표현했던 백조들이 남자로 바뀌다니, 매튜 본의 <백조의 호수>는 성별의 전환이라는 설정만으로도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근육질의 남성 무용수들은 상의를 탈의한 채 깃털 바지만 입고 역동적이고 관능적으로 춤을 추어, 이전의 <백조의 호수>와는 다른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하지만 무용수의 성별이 바뀐 것보다 더 매력적인 것은 우리가 익히 알던 동화에서 재탄생한 스토리였다. 강인하고 자유로운 백조를 흠모하는 유약한 왕자를 주인공으로 하여, 그의 현실과 환상을 오가며 음악과 춤만으로도 그의 정신세계를 깊이 있게 표현하는 것이 이 작품의 핵심이다. 남성 백조라는 파격적인 설정은 작품의 주제를 표현하는 데 적합한 것이었기에 강렬한 자극과 동시에 감동을 줄 수 있었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4호 2012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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