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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처 | [Focus] 지나치게 확장되는 멀티 캐스팅 [NO.105]

글 |박병성 2012-05-15 4,933

더블(Double), 트리플(Triple). ‘2배’, ‘3배’를 의미하는 이 말은 김연아가 한창 활약할 때 피겨스케이팅 경기장에서 익숙하게 들었던 용어인데 이제는 공연계에서도 많이 듣게 된다. 원 캐스트보다 둘 이상 다수로 캐스팅하는 멀티 캐스팅이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4배수를 의미하는 쿼드러플(Quadruple)이 들리더니 급기야 한 배역에 다섯 명을 캐스팅 하는 퀸터플(Quintuple) 캐스팅까지도 등장했다. 자꾸만 늘어가는 멀티 캐스팅의 속사정을 들여다본다.

 

 

 

 

 

소규모 마니아틱 공연의 멀티 캐스팅
배우들의 출연 계약서를 보면 거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항목이 있다. ‘계약 기간 중 다른 공연의 참여할 수 없다는 조항이다.’ 단, 제작사의 동의가 있으면 가능하다는 단서가 붙는다. 이런 항목이 들어가는 이유는 같은 배우가 경쟁작에 출연하는 것을 막고, 온전히 작품에 몰두하게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국내 뮤지컬계에서 이런 조항은 무색해 보인다. 멀티 캐스팅이 일반화되면서 서로 다른 작품에 출연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라이브가 생명인 공연은 흔히 배우의 예술이라고 할 정도로 배우의 중요성이 크다. 어떤 배우이냐에 따라 공연의 질이 달라지게 된다. 언제 공연을 보더라도 그 작품의 퀄리티를 일정하게 유지하다는 측면에서 원 캐스트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다.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 공연 선진국에서는 원 캐스트를 기본으로 한다. 그러나 작품에서 배역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장기공연일 경우 대체 배우(Alternate)를 두는 것이 배우를 위한 배려나 만약의 사고를 대비하는 데 효과적이다.

 

최근 국내 뮤지컬계에서는 오히려 원 캐스트를 찾아보기 힘들 지경이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배우들이 참여한 작품은 2009년 <헤드윅> 공연이다. 윤도현, 강태을, 송용진, 송창의, 윤희석, 최재웅 등 여섯 명이 헤드윅으로 출연했다. <헤드윅>은 2005년 초연부터 멀티 캐스팅된 작품이다. 초연 때 조승우, 오만석, 송용진, 김다현 등 네 명이 캐스팅되었고, 그 이후에도 멀티 캐스팅을 해왔다. 멀티 캐스팅의 가장 큰 장점은 각각의 개성이 다른 배우들의 출연으로 다양한 작품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헤드윅>과 같이 거의 원맨쇼로 이루어진 작품에서는 이러한 장점이 부각된다. <헤드윅>이 콘서트 스타일의 원맨 쇼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다른 배우들과 앙상블 문제도 적다. <쓰릴 미>나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와 같은 2인극 역시 멀티 캐스팅을 주로 하는 작품이다. 그러나 원맨쇼가 강한 콘서트형 작품이나 2인극이라고 하더라도, 배우가 무대에 오르는 기간이 멀어지면 자연스럽게 무대 감을 잃을 수밖에 없다. 제대로 캐릭터에 빠져들고 일정한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출연 공백이 커서는 안 된다.

 

 

 


 

 

스타 캐스팅의 일환
소수의 주인공이 주도하는 작품에만 멀티 캐스팅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대형 뮤지컬에서도 빈번히 이루어지고 있다. 2010년을 넘어서면서 더블 캐스팅을 넘어 트리플, 쿼드러플 캐스팅이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2008년 <햄릿>의 햄릿 역이나, 2011년 <모차르트>의 모차르트 역, 2010년 <삼총사>의 달타낭 역에는 각각 네 명의 배우가 캐스팅되었다. 2011년 <삼총사> 성남아트센터 공연에서는 엄기준, 이지훈, 규현, 허영생, 오원빈 무려 다섯 명이 달타냥으로 무대에 올랐다. <삼총사>의 경우는 달타냥뿐만 아니라 아토스, 아라미스, 프로토스 등 대부분의 주요 캐릭터들을 더블 캐스팅돼서 캐스팅 조합이 더욱 복잡했다. 최근 <캐치 미 이프 유 캔> 역시 엄기준, 박광현, 김정훈, 규현, 키 등 퀸터플 캐스팅으로 하루 2회 주 12회 공연을 이어가고 있다.


대형 뮤지컬의 멀티 캐스팅 역시 개성이 다른 배우들을 출연시켜 다양한 작품의 매력을 보여줄 수 있지만, 그 효과는 앞선 작품들에 비해 떨어진다. <햄릿>과 같이 주인공의 비중이 큰 작품이라 할지라도 대형 작품들은 주조역들과의 앙상블이 중요한데 주인공을 맡은 배우가 셋 이상이 되면 아무래도 호흡을 맞추기가 원활하지 않다. 관객들로서도 피해가 발생한다. 배우들 간의 실력 차이가 구별이 안 된다면 상관없겠지만 연습 시간도 부족한 데다가, 무대 경험이 없는 연예인이나, 신인들이 다수 멀티 캐스팅에 포함되는 상황이라 그날 캐스트가 누구냐에 따라 작품성에 차이를 보인다. 정보가 부족한 관객들은 피해를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같은 배역을 다수의 배우가 맡다 보면 연출이나 다른 스태프들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한 배우가 연습할 수 있는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 다른 배우들과 호흡을 맞출 기회도 적고, 제대로 된 런 쓰루나 무대 리허설을 해볼 기회도 줄어든다. 그래서 멀티 캐스팅 작품들은 충분한 준비 부족으로 인해 공연 초반의 작품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멀티 캐스팅 공연은 초반을 피하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멀티 캐스팅을 하는 이유
<헤드윅>, <쓰릴 미>, <스토리 오브 마이 라이프> 등 마니아들의 지지를 받는 작품들은 멀티 캐스팅을 통해 반복 관람을 유도한다. 이러한 작품들은 꼭 스타가 아니다 할지라도 새로운 배우들의 참여로 다양한 작품의 해석을 맛보게 된다. 2011년 <쓰릴 미> 공연은 신인들을 다수 포함한 캐스팅을 시도하기도 했다.  

 

반면 대형 뮤지컬들의 경우는 스타 캐스팅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스타들의 스케줄이 모든 공연에 출연할 여유가 없어 대부분 스타가 출연하면 멀티 캐스팅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나 최근 쿼드러플, 퀸터플까지 확장되는 이유는 스타들의 요구라기보다는 제작사들이 스타 캐스팅에 의존하려는 마케팅 전략에서 찾을 수 있다. 대형 뮤지컬에서 셋 이상의 멀티 캐스팅을 시도하는 이유는 여러 명의 스타 캐스팅을 통해 그 배우들의 팬층을 관객층으로 끌어들이고자 하는 것이다. 스타 마케팅 자체가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멀티 스타 캐스팅은 작품 자체보다도 캐스팅에 의존하려는 마인드가 깔려 있다. 지금같이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작품을 알릴 수 있는 스타들의 출연은 이해가 가지만, 무대 경험도 많지 않은 연예인들을 단지 대중들에게 잘 알려졌다는 이유로 다수 캐스팅 하는 것은 어느 정도 작품성을 포기하더라도 관객을 끌어들이겠다는 계산이다.

 

멀티 스타 캐스팅은 치열한 공연 환경에서 폐단을 알면서도 관심이 쏠리는 매력적인 유혹이다. 그러나 작품성보다 스타성에 기대기만 한다면 공연 시장의 미래는 어둡다. 스타의 팬들이 공연계를 지탱해주지 않는다. 공연계를 지킬 사람들은 스타가 아닌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뮤지컬 배우들이고, 공연이 좋아 찾아오는 관객들이다. 그들이 우리 뮤지컬계를 든든하게 받쳐줄 사람들이다.

 

 

 

*본 기사는 월간 <더뮤지컬> 통권 제104호 2012년 5월호 게재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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